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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달 기다려 간 대학병원에서 보낸 10분의 기록

어제는 연초부터 벼르고 별렀던 대학병원 진료가 있는 날이었다. 사실 처음 증상을 느낀 건 작년 가을이었는데, 집 근처 의원에서 ‘큰 병원 가보는 게 좋겠다’는 말을 듣고 예약을 시도했을 때만 해도 이렇게까지 오래 걸릴 줄은 몰랐다. 처음에는 대학병원 홈페이지 예약 시스템에 들어가서 날짜를 찍어보려 했는데, 인기 있는 교수님들은 이미 3개월 뒤까지 일정이 꽉 차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조금 덜 바빠 보이는 선생님으로 선택해 예약을 걸어두고, 그사이에 잊어버리지 않게 달력에 크게 표시를 해두었다.

예약 당일 아침의 묘한 긴장감

병원 예약 당일 아침은 묘하게 마음이 분주했다. 진료 시간은 오후 2시였는데, 접수하고 채혈하고 엑스레이까지 찍으려면 적어도 한 시간 반은 일찍 오라는 문자가 왔기 때문이다. 택시를 타고 강남의 한 대학병원으로 향하는데, 미터기가 올라가는 것을 보며 3만 원 가까이 되는 비용을 보면서 ‘건강 관리를 미리 좀 할걸’ 하는 뒤늦은 후회가 들었다. 병원 로비는 정말이지 사람이 너무 많았다. 접수처 앞에 줄을 서서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는 동안, 주변을 둘러보니 다들 나처럼 지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꼬여버린 순서와 짧았던 면담

겨우 접수를 마쳤더니 이번에는 채혈실 앞 대기 번호가 50번대였다. 피를 뽑고 다시 진료실 앞으로 가서 대기하는데, 예약 시간은 이미 지났고 내 이름은 전광판에 나타날 기미가 없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내 서류 일부가 영상의학과 쪽에서 바로 넘어오지 않아서 대기가 길어졌던 것이었다. 그렇게 1시간 넘게 기다려서 들어간 진료실에서 보낸 시간은 고작 10분 남짓이었다. 선생님은 모니터 화면을 보면서 빠르게 상황을 설명해주셨고, 다음 주에 다시 와서 검사 결과를 확인하자고 했다. ‘세 달을 기다렸는데 이게 전부인가’ 하는 생각이 아주 잠시 들었지만, 밖에서 기다리는 다음 환자들을 생각하니 더 질문하기도 껄끄러웠다.

동네 병원과는 다른 공기

예전에는 동네에 있는 작은 이비인후과나 정형외과만 가도 의사 선생님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자세히 해주셨던 것 같다. 그런데 대학병원은 확실히 돌아가는 시스템 자체가 달랐다. ‘진료 예약’이라는 단어 자체가 하나의 관문처럼 느껴질 정도로 촘촘하게 짜여진 시간표 속에서 나는 그저 하나의 데이터 포인트가 된 기분이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지하철 안에서 핸드폰으로 다음 예약을 확인했다. 그런데 벌써 다음 달 예약까지 가득 차 있는 걸 보니 한숨이 나왔다. 왜 예전에는 이런 예약 시스템을 ‘편리하다’고만 생각했을까. 시스템이 정교해질수록 인간적인 교류는 줄어드는 것 같아 조금 서글펐다.

남겨진 숙제와 모호한 마음

결국 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먹고 나니 허탈함이 몰려왔다. 오늘 병원비로 수납한 비용만 해도 검사비를 포함해 20만 원이 훌쩍 넘었는데, 실질적으로 내 몸의 문제가 해결된 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냥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는 사실 하나뿐이다. 다음 주에 병원에 다시 가면 또 접수 번호표를 뽑고, 또 기다리겠지. 이 과정이 언제까지 반복될지 알 수 없다는 게 참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굳이 비교하자면 동네 의원은 당일 예약이 되거나 그냥 가서 기다리면 되는데, 여기는 무슨 시험 치르듯이 일정을 관리해야 하니 말이다. 다음 주 진료 때는 조금 더 꼼꼼하게 물어봐야겠다고 다짐하지만, 막상 그 앞에 서면 또 똑같이 긴장해서 고개만 끄덕이고 나오지 않을까 싶다. 무언가 명확하게 해결되지 않은 상태로 침대에 누워 있으니, 몸보다 마음이 더 피곤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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