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화기 너머의 기계음과 대화하는 기분
지난주에 갑자기 허리가 욱신거려서 급하게 동네 정형외과를 찾으려는데, 그게 생각보다 쉽지가 않았다. 예전에는 그냥 병원 문 열 시간 맞춰서 가면 됐던 것 같은데, 요즘은 어디를 가든 ‘예약제’가 기본이라나. 네이버 지도로 가까운 곳을 찾아서 전화를 걸었더니, 받자마자 아주 차가운 기계음이 흘러나왔다. “진료 예약을 원하시면 1번, 상담원 연결은 0번입니다.” 1번을 눌렀더니 또 다른 녹음된 안내가 흘러나왔다. 6월 1일부터는 AI 진료 예약센터가 도입되어서 24시간 언제든 가능하다는 광고가 나오는데, 막상 당장 아파서 예약하려는 사람한테는 그게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대기 시간이 길어질 것 같다는 안내만 무한 반복되다가 툭 끊기기를 세 번. 그 시간에 그냥 병원 앞까지 직접 걸어가는 게 더 빨랐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네 병원의 묘한 온도 차이
예전에 어디선가 의료 대란 때문에 큰 병원 진료가 힘들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때는 남의 일처럼 느껴졌는데, 막상 내가 예약을 하려고 보니 그 여파가 여기까지 닿아있나 싶기도 하고. 큰 병원들은 AI 보이스봇까지 동원해서 24시간 예약을 받는다고 홍보하지만, 사실 우리 같은 동네 사람들은 그런 최첨단 시스템보다 그냥 사람 목소리가 듣고 싶을 때가 있다. 어떤 치과는 예약이 꽉 찼다며 한 달 뒤에 오라고 하고, 또 어떤 곳은 아예 예약을 안 받는다고 직접 와서 기다리란다. 1만 원 내외의 초진 비용을 내고도 병원 선택조차 이렇게 눈치 게임을 해야 하나 싶어서 헛웃음이 났다. 동네 병원들이 예전만큼 평소처럼 돌아가는 건지, 아니면 다들 숨 가쁘게 버티고 있는 건지 가늠이 안 됐다.
이동 수단부터 진료까지 챙겨야 하는 세상
최근에 태안 쪽으로 가족 여행을 다녀왔는데, 거기서 우연히 ‘병원 동행 서비스’라는 걸 알게 됐다.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을 위해서 병원 접수부터 진료, 약 수령까지 다 챙겨주는 곳이 있더라. 듣기에는 참 좋아 보이는데, 한편으로는 비용이 얼마나 들까, 정말 믿고 맡길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먼저 들었다. 나중에 우리 부모님도 나이가 더 드셔서 이런 서비스가 필요해지면 그때는 정말 고민이 많아질 것 같다. 예약 하나 하는 것도 이렇게 진이 빠지는데, 이동하고 진료받고 다시 집에 모셔다드리는 과정을 다 수행하려면 얼마나 체계적이어야 하는 걸까. 편리해진다는 건 결국 누군가의 노고를 돈으로 사는 건가 싶어 마음이 복잡해졌다.
반려동물 병원은 더 어렵더라
지인이 얼마 전에 강아지가 밤에 아파서 응급실을 찾느라 고생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오사카 같은 곳에는 펫 친화적인 숙소와 야간 진료 병원 정보를 한꺼번에 제공하는 서비스가 있다던데, 국내는 그런 정보를 실시간으로 확인하기가 참 애매하다. 급한 마음에 인터넷을 뒤져봐도 어디는 진료비가 얼마인지 명확히 안 나와 있고, 야간에는 진료를 안 한다는 팻말만 붙어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사람이 아픈 것도 서러운데, 말 못 하는 동물까지 아프면 정말 답이 없겠구나 싶었다. 단순히 ‘AI가 다 해줍니다’라고 말하는 홍보 문구 뒤에는, 여전히 우리가 직접 발로 뛰어야만 해결되는 불편한 공백들이 꽤 크게 자리 잡고 있는 것 같다.
예약이라는 숙제를 남긴 채로
결국 그날은 예약 전화를 포기하고 무작정 근처 한의원을 찾아갔다. 강동구 길동 근처였는데, 예전에 교통사고 후유증 때문에 가봤던 곳이라 익숙했다. 다행히 대기가 많지 않아서 진료를 받을 수 있었지만, 병원 문을 나오면서도 개운하지 않았다. 다음에 또 아프면 그때도 이렇게 무작정 찾아가야 하는 건지, 아니면 더 세련된 예약 시스템을 공부해서 사용해야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모든 것이 스마트해지고 빨라졌다고는 하지만, 내 몸 하나 아픈 걸 케어하는 과정은 왜 점점 더 복잡하고 어렵게만 느껴지는 건지 모르겠다. 오늘 밤에도 누군가는 또 전화기 앞에서 대기 번호만 듣고 있을 것 같다.

AI 예약센터는 편리해 보이는데, 실제 상황에서는 정보 부족 때문에 오히려 더 답답한 경우가 많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