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의 의료자문 요청이 불편한 까닭
보험금을 청구하고 나면 심사 과정에서 난데없이 의료자문 동의서를 작성해달라는 연락을 받는 경우가 있다. 보험사 측은 객관적인 판단을 위해서라고 설명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보험금 지급을 거절하거나 삭감하기 위한 명분으로 활용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상담 현장에서 마주하는 환자들은 본인의 주치의가 이미 작성한 진단서가 있는데 왜 굳이 제3의 의사에게 다시 소견을 묻는지 의아해한다. 이 과정은 환자의 권리를 제한하는 도구가 될 수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보험사가 의뢰하는 자문은 환자를 직접 진료하는 방식이 아니다. 서류만을 검토하여 판단을 내리기 때문에 환자의 실제 상태를 오인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특히 뇌출혈진단비나 유방암진단비와 같이 고액이 걸린 사건에서는 보험사가 자문을 통해 지급 범위를 줄이려는 시도를 노골적으로 하기도 한다. 환자가 동의서에 서명하는 순간 보험사는 정당한 절차를 밟았다는 명분을 얻게 된다. 결국 이 서명 한 번으로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의 보험금이 공중으로 사라질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의료자문 거절 시 발생할 수 있는 변화
많은 이들이 동의서를 거부하면 보험사가 불이익을 줄까 봐 불안해한다. 하지만 법적으로 보험사의 자문 요청에 반드시 응해야 할 의무는 없다. 자문을 거절하고 본인의 주치의 소견을 고수할 때 보험사는 대안을 찾기 시작한다. 이때 보험사가 택하는 다음 단계는 의료감정이다. 법원이나 대한의사협회 같은 공신력 있는 기관을 통해 감정을 진행하게 되는데 이는 자문과는 무게감이 완전히 다르다.
보험사 내부에서 시행하는 자문과 달리 외부 감정은 법적 효력이 발생한다. 물론 이 과정 역시 환자에게 유리하게만 흘러가지는 않는다. 주치의와 감정의의 소견이 대립할 경우 사건은 장기화된다. 6개월에서 1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될 수 있으며 변호사 선임 비용이나 감정 비용 같은 부대 비용이 발생한다. 단순히 보험금을 빨리 받고 싶은 마음이 앞선다면 이 지루한 싸움을 견디기 어려울 수 있다. 따라서 본인이 처한 상황에서 감당해야 할 기회비용을 반드시 계산해 보아야 한다.
공정한 결과를 얻기 위한 절차 파악하기
만약 이미 동의서를 제출했거나 자문 결과가 불리하게 나왔다면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가장 먼저 확인할 것은 자문 내용의 기초가 된 의무기록과 영상 자료가 누락 없이 전달되었는지이다. 보험사는 자신들에게 유리한 자료만을 발췌해 자문을 의뢰하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때는 본인의 주치의에게 해당 자문 소견이 어떤 의학적 근거로 반박될 수 있는지 재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다음은 단계별 대응 전략이다. 첫째 보험사가 제시한 자문 결과를 문서로 요청한다. 둘째 해당 의학적 견해에 오류가 있음을 입증할 수 있는 최신 논문이나 교과서적인 근거 자료를 준비한다. 셋째 보험사에 공식적인 이의제기서를 제출한다. 넷째 만약 이 단계에서도 조율이 되지 않는다면 손해사정사나 의료전문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본격적인 소송 여부를 검토한다. 보통 이 단계까지 오면 뇌혈관 질환이나 장해 진단처럼 복잡한 사안들이 많아 일반인이 혼자 처리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주치의 소견과 자문 결과의 괴리 살펴보기
현장에서 보면 주치의와 자문의의 소견이 갈리는 이유는 명확하다. 주치의는 환자의 치료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았기에 환자의 예후를 누구보다 잘 안다. 반면 자문의는 텍스트와 영상만을 보기에 실제 환자가 느끼는 통증의 강도나 기능 저하 정도를 과소평가하기 쉽다. 환자들은 종종 이런 괴리감에 화를 내지만 의학적 판단의 영역에서는 근거 서류가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비교를 해보자면 주치의 소견은 실시간 업데이트가 가능한 생생한 기록이고 보험사 자문은 과거의 특정 시점을 기준으로 재단한 박제된 기록이다. 장해 판정 같은 경우도 치료가 종료된 시점이 아니라 영구적인 기능 상실을 기준으로 따지기 때문에 접근 방식이 완전히 다르다. 무엇이 더 합리적인지는 개별 사건의 쟁점에 따라 다르지만 보험사가 제시하는 논리에만 함몰되지 않는 태도가 중요하다.
의료자문이 무의미해지는 실무적 상황
끝으로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모든 사건에서 자문이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진단명이 명확하고 보험약관상 지급 요건이 직관적인 단순 보험금 청구 건이라면 자문 결과가 판도를 뒤집기는 어렵다. 지나치게 과잉진료 의심이 드는 경우나 병원에서 의사구인구직 문제 등으로 진료 기록이 부실하게 관리된 경우에 한해 보험사는 자문을 통해 꼬투리를 잡으려 한다. 평소 본인의 건강기록이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다면 보험사의 어설픈 자문 시도는 애초에 통하지 않는다.
자신의 상황이 복잡하다면 가장 먼저 해당 보험 약관에서 진단 기준이 무엇인지 확인해야 한다. 보험금을 청구하기 전 미리 전문적인 자문을 받는 것도 방법이다. 이미 보험사에서 자문 동의서를 들고 왔다면 일단 서명을 멈추고 전문가에게 내용을 보여주는 것이 현명하다. 모든 대응은 본인의 의지대로 움직여야 하며 보험사의 속도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 다음에 보험사에 연락이 오면 자문 결과를 문서로 먼저 받아보고 검토하겠다고 말한 뒤 전화를 끊는 연습부터 해보길 권한다.
